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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江邊에 살리라 /- 默想

야고보서 4장

키워드 :  싸움, 다툼, 정욕, 교만, 복종, 율법의 준행자, 허탄한 자랑

1. 3장에서 사도는 신자들에게 세상으로부터 오는 지혜와 하늘로서 오는 지혜의 큰 차이를 설명하면서 신자들이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는 이유는 그 마음의 정욕과 귀신의 유혹으로 인하여 미혹함을 받음으로 의의 선한 열매를 맺어야 할 신자들이 악한 열매 즉 형제를 저주하고 시기와 다툼이 있다는 것을 가르쳤다.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는니라"(약 3:13 -18)

4장에서 사도는 이어서 , 한걸음 더 나아가 이러한 악한 열매를 맺게 해주는 원인, 즉 타락한 자가 드러내는 가장 큰 특징을 설명한다.  그것은 교만이다. 

2. 신자는 먼저 교만한 자가 하나님을 대할 때 나타나는 특징을 가르치고 있다.

교만한 자는 세상과 친구하려 한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이,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으로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전심으로 이루기를 원하고 감당하며 살아가야 하는데, 육신의 정욕과 마귀의 유혹으로 인하여 마음이 교만하여졌다. 사람의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의 지배를 받고 나아가야 하는 데 대신 마음의 정욕을 따라서 행하게 된다. 성경에서는 이런 것을 교만이라고 가르친다.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르지 아니하면 그는 교만하여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딤전 6:3절이하) . 사람의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착념치 아니하면 그 마음이 교만해서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을 한다고 가르친다.

신자라도 이런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정욕으로 인한 욕심을 채우려고 다투고 싸운다. 심지어 자기의 타락한 욕구를 충족시키려고 하나님께도 구한다. "너희들이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구해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다" 마음이 높아져서 하나님의 도우심과 보호하심이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여 구하지도 않고, 설령 구하더라도 자기의 타락한 욕심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정욕으로 구한다고 하신다. 그러면서 이런 교만한 마음을 가진 자를 사도는 "간음한 여인" 이라고 칭한다. 구약의 호세아서에서도 이스라엘을 그렇게도 사랑하는 신랑이신 하나님과 그런 하나님을 떠나 세상과 벗하여 간음을 하는 이스라엘을 향한 절절한 호소가 나오지 않는가?

사도는 구약의 말씀으로 권면한다.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잠언 3:34) 겸손하여 하나님께 복종하여 두 마음을 품지 말고 정욕과 싸우고 마귀와 대적하라고 하신다. 그리고 하나님과 가까이 하라고 하신다. "죄인들아"하고 칭하시면서 자신이 죄인이어서 간음한 여인이라는 것을 항상 생각하고 그 자신의 죄 지음으로 인하여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고 웃음을 애통으로,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꾸라고 하신다. 하나님 앞에 겸손한 자만이 이런 슬픔과 애통을 가질 수 있다. 우리 주님도 가르쳐주셨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이요"(마 5: 4)

3. 다음 사도는 교만이 형제를 대할 때에 어떻게 나타나는 가 하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사람은 교만함으로 형제를 비방하고 판단한다.

기본적으로 형제를 비방하고 판단한다고 할 때 그 사람의 마음 속에는 자신을 형제보다 높은 위치에 두고 대하려고 한다. 자기가 뭐 좀 형제보다 더 아는 것이 있다고, 형제보다 나은 점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는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라" 고 가르치는 데, 그 마음이 교만하여져서 형제를 나보다 낮게 여기기 때문에 형제를 비방하고 판단하여서 자신의 형제보다 우월함을 드러내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니 교회에 시기와 다툼, 싸움이 생겨나는 것이다.

성경에서는 형제라는 존재는 우리에게는 오직 사랑의 대상일 뿐이다. 우리의 형제이기 때문에 더욱 가까이 대하고 사랑해야 하는 것이고, 설령 형제가 나에게 잘못을 대하였다고 할 지라도 용서하라고 주님은 가르친다. 그러나 우리는 형제를 사랑하는 대신 형제를 비방하고 판단하려고 한다. 형제가 우리에게 큰 잘못을 범했다고 해서,  우리에게는 그로 인하여 형제를 미워해도 되는, 미워할 수 있는 자격과 권리가 생기는 것이 아니다. 형제의 잘못과 부족으로 인하여 내가 형제 위에서 말도 하고 행동도 할 수 있는 권한이 생긴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오히려 그 형제를 용서하고 위해서 기도하라고 성경은 가르친다.  그러므로 사도는 "너희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관이로다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니 능히 구원하시기도 하시고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희가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하고 가르친다. 과연 그렇다. 형제는 존재론적으로 우리의 사랑의 대상이고 그 어떤 조건에서도 우리는 형제를 미워하거나 판단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적이 없다. 말하자면 우리는 하나님의 율법의 말씀에 순종하는 데 힘써야 하는 준행자이지, 율법을 내가 재량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재판관이 아니다.

4. 마지막으로 사도는 사람이 자신의 인생을 대할 때에 교만이 어떻게 나타나는가 하는 것을 가르친다.

교만한 자는 자기의 생명이 자신이 어떻게 자기의 생활을 영위하는 데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즉 그 인생의 주인이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오늘은 뭘 하고 내일은 뭘 하고 하는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대로 착실히 행하기를 힘쓴다. 그리고 그 계획대로 내가 잘 행하기만 하면 내 인생과 삶이 지금보다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도는 이를 허탄한 생각이라고 가르친다. 본문에서 어떤 도시에서 장사를 하며 이익을 남기려는 자들을 허탄한 생각을 가진 자라고 한다.

이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조금 더 나은 생활을 하기 위하여 내 일생 동안에 이런 저런 일을 하려고 계획하고 있으나,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고 사도는 가르친다. 인생이 60 길어야 80 인데, 즉 유한한 생명을 가지고 있는 인생이 이를 모르고 이 세상에서 자신의 몸과 맘을 즐겁게 하면서 살아가려고 애쓰는 데 이것이 얼마나 허무한 생각인가 하는 것이 전도서 전체에서 가르치지 않는가? 사도는 권면한다. "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뜼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

사람의 존재 이유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즐겁게 해드리는 데 있다. 그런데 이 존재의 목적에 착념치 아니하고 마치 내 인생의 주인은 나인 것처럼 이것도 하고 저것도 계획하여서 인생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 가고자 하는 마음은 교만에서 나오는 것이다. 심지어 하나님에 대한 이런 지식이 있는 사람일지라도, 신자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착념치 아니하면 교만해 져서 자신의 생활을 자신이 영위하려 고 한다.

그래서 사도는 마지막으로 말씀한다.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

5. 우리가 교만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디모데 전서 6장 말씀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착념하여 성신의 은혜에 겸손히 순종해 나가는 길 밖에 없다. 이것이 앞의 1장에서 보여준 우리의 선조 아브라함과 기생 라합이 보여준 행하는 믿음인 것이다.

 

2020.01.18 아침 10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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