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는 (물론 동물들에게도 있겠지만) 동물들과 비교할 수 없는 마음의 정서가 있습니다.
때로는 기쁘고, 때로는 슬픔을 느끼곤 합니다.
이 기쁘고 슬픔의 정서는 인간의 일생을 동반합니다.
우리에게 슬픔도 기쁨도 너무나도 친숙하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죄를 짓고 타락함은 전 인격적인 타락임을 배웁니다.
지, 정, 의 모두의 타락이라고 배웁니다.
인간의 정서도 타락하였다는 것이지요.
너무도 타락해서 , 하나님의 영광이 기쁨의 원천이어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이 바라는 것을 뭔가를 이룰 때에 기쁨을 느끼고,
심지어 기쁨을 위한 기쁨을 목적으로 하기도 합니다.
동일하게 슬픔을 위한 슬픔도 목적이 될 수도 있지요 .
마치 현대 종교가 하나님의 영광과 인간의 행복의 선후 순서를 늘 헷갈려 하듯이 말입니다.
타락된 우리의 슬픔이나 기쁨이 우리의 우상이 될 수도 있음을 느낍니다.
우리의 기쁨이 너무나도 커서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게 되고 ,
우리의 슬픔이 너무나도 커서 하나님의 권능을 잊어버립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가 주님께 의지하기를 원하지 않습니까? (시편 25편)
오직 주님만 바라보기를 원하지 않습니까?
그 곳에는 나의 기쁨도 슬픔도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베푸신 크신 사랑이 엄연히 존재하는 사실
이 부인할 수 없는 사실 때문에 슬픔도 우상의 자리에서 내려와서 주님의 위로가 되고
기쁨도 우상의 자리에서 내려와서 겸손과 감사가 되지 않을가요.
혹시 내가 너무 슬픔에 잠겨 있어서
혹시 내가 너무 기쁨에 잠겨 있어서
주님을 보지 못하고 의지하지 아니하는 지는 아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