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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江邊에 살리라 /- 江邊에서

교회의 지체로 서서 나간다는 것

의심할 필요 없이 교회는 죄인들로 구성이 되었다. 우리 모두 세상과 함께 즐거이 죄를 지으며 하나님 모르며 살던 사람들이다. 그런 우리를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주와 구주로 오시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 나라의 임금이 되시고 지금도 하나님의 우편에서 그 나라의 백성을 친히 말씀과 성신으로 다스리고 계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 안에서 산다.


툭 털어내면 정말 떨어지는 건 불의, 악, 죄 밖에  없던 나를 황송스럽게도 주께서 먼저 사랑하셔서 위해서 십자가에서 대속의 은혜를 베푸시고 새 생명을 주시사 예수를 주와 구주로 고백하게 하시고 주의 몸된 교회의 지체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주께서 부르셨다. 그러므로 나는 이제는 세상과 함께 죽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머리로 모신, 주의 몸된 교회의 지체로 산다. 


그러면 나는 달라진 것이 무엇인가? 주의 새 생명을 받은 자로써 본질이 달라졌는가? 달라진 것이 없다. 여전히 나는 부지불식 중에 죄를 짓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너무 무지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는 너무나도 서툴다. 교회의 지체로서 열심히 살아가려고 하지만, 참된 교통을 나누려고 하지만, 죄인인 나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내 안에 나오는 것은 선한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주의 교회는 거룩하다. 왜냐하면 머리되신 그리스도께서 거룩하시기 때문이다. 때문에 주님은 우리들에게도 거룩하기를 원하신다. 그런데 또한 주의 몸된 교회는 나와 같은 죄인들로 이루어졌다. 죄인들에게 거룩이라는 말은 너무나도 거리가 먼 것이다. 어떻게 하면 성도의 거룩한 교통을 할 수 있을가?


교회의 통일성, 교회의 하나 됨. 

교회에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그들은 사회에서 다양한 업종과 계층에 속해 있다. 서로 받은 교육이나 가정 배경 모두 다르다. 더 세부적으로 각 사람의 성격들도 서로 각각이다. 어떤 사람들은 외향적인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내성적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형제사랑이다. 그 사랑을 교회의 증표로 보여 주셨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라고 하셨다. 


어떻게 하면 형제를 사랑할 수 있는가?


주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에 나도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음으로, 이제는 더이상 내가 사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께서 사심으로, 교회가 오직 그리스도께서만 사심으로 거룩하고 통일된 교회로, 형제가 서로 사랑하는 교회로 서 갈 수 있는데,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음을 생각하지 못하고, "아상"이 먼저 드러날 때에는 내 안의 온갖 더러운 것들이 펌프처럼 용솟음치지 않는가? 

 그리스도의 거룩하심과 내 안의 온갖 부정함이 얼마나 대조적인가? 더우기 교회의 지체라는 한 신분(Roll)에 있는 나에게서 나타나는 이 두가지는 너무나도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것이다. 차라리 구정물이라고 하면 구정물은 워낙 더러운 물이니깐 그러려니 하지만, 깨끗한 물이 될 능력이 없으면서, 나 자신이 구정물임을 깨닫지 못한 채 깨끗한 척하는 것은 얼마나 조소스러운 것이 아닌가? 얼마나 큰 자가 당착인가?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아질 것이 없다. "아상"이 있으면 오늘보다 내일이 더 암울할 뿐이다. 나는 '나'라는 더 깊은 심연 속으로 빠져서 헤어져 나올 수가 없다. 


교회에서 '아상'이 없어야지 형제를 사랑할 수 있고, 통일된 교회로 서 나갈 수 있다. 

알고 있는 지식이 우리를 자유롭게 못한다. 오히려 올무가 될 수 있다. 오히려 주께서 가르쳐주신 지식을 주의 성신을 의지하여 하나님 사랑, 형제 사랑을 해 나갈 때에 그것은 열매로 드러난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 등등은 모두 지식 그 자체가 아닌 것으로서 성신이 주신 생명력의 열매로서 드러나는 것이다. 교회 생활에서 과연 이러한 것들이 반드시 드러나야겠다.

과연 그렇다. 

주님, 이 죄인을 용서하시고 도와 주시옵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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