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 고린도라는 도시가 가지고 있는 세상중심, 정욕중심적인 요소와 하나님의 교회가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뜻에만 순종하는 하나님의 뜻에 의해 지배되는 곳이라는 특성의 극단의 배치성.
2. 고린도 시에 대한 사도의 빚진 자로서의 압박감, 책임감, 아마 에덴에서 고린도로 와서 복음을 전하여 고린도 교회를 세운 사도로서는 고린도 도시에 진리 즉 주의 복음을 전해야 할 책임감을 크게 느꼈을 것이다.
롬 1: 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 고린도 교회는 이 복으의 빛을 드러내는 데 실패함.
3. 이 서신서에서 교회의 실패의 원인과 성고으이 비결이 나와 있음. 교회의 세속성은 교회가 감당해야 할 영적인 증거를 감당할 수 없게 함. 교회의 영성은 교회의 세속성을 바로 잡기 위한 것이며, 교회로 하여금 그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 할 수 있도록 함.
실패의 원인:
ㄱ. 그 도시의 시대정신이 교회를 침범했기 때문이다. 멋진 수사학과 웅변의 시대정신이 교회에 침투되어 교제를 나누는 남녀들이 지식적으로 들떠서 종교적인 삶을 붙잡고 있었다. 어떤 이들은 "우리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들은 나는 아볼로에게라"하며 또 어떤 이들은 "나는 그리스도에게라 " 함. 바울, 아볼로, 게바가 교회에서 다양한 견해를 가진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그들의 설교에 있어서 강조점이 서로 달랐기 때문임.
ㄴ. 도덕적인 방만의 이유: 경건의 산만은 도덕적인 기준의 하락을 가져옴. 고전 5: 1 -2 절에서 나타내듯이 아비의 아내를 취하는 일이 있었음.
ㄷ. 도시에는 저마다 자기를 가장 위하고 있음. 다른 사람에 대한 양심적인 책임감 같은 것이 없음. 이기심이 열심의 기초임. 교회 구성원 상호간의 책임은 무시됨.
4. 이 서신의 두가지 중심교훈, 교회에 도시의 정신이 침투되면 교회는 그 도시 속에서 교회의 기능을 다 하는 데 실패한다는 것과 교회가 자신의 삶의 중심이 되는 사실들에 대해 충실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경륜 가운데 있는 바를 실제 삶에서 실현하지 않을 때, 교회는 도시의 정신이 자기를 침범하도록 허락하게 된다는 사실임. 즉 시대정신에 타협하여 두길 보기를 하게 된다는 것임.
교회가 얼마나 실패하느냐? 하는 것은 바로 교회가 지신을 그 세대 정신에 얼마나 내어주느냐? 하는 것에 달려 있다. 이는 또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중심에 얼마나 진실하지 못하고 있느냐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5. 십자가 라는 말은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은 들었으며, 또 알고 있었다. 그리스도의 순결이 중생의 기적 가운데서 그들을 감동시켰다. 하나님의 사랑이 이미 그들의 가슴 속에서 바깥으로 흘러 넘쳤다. 그러나 그들은 그리스도의 순결이 주는 감동에 자신을 전적으로 드리지 못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랑의 외침에 응답하지 않았다. 따라서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힘이 점점 약화되어 가고 있었고 고린도 도시의 시대의 정신이 밀어들어왔다. 이렇게 해서 고린도 교회가 실패했다. 시대정신에 잠식되어 버린 것이다.
6. 따라서 교회의 성공의 비결은 바로 이것이다. 오직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 자신의 삶을 교회가 실현(실천)함으로써 이 도시 가운데 그 고유한 빛으로서 소금으로서의 기능을 성취할 수 있다. 이 삶은 주님과 유기체적인 삶으로 나타난다. 교회는 한 주님, 그 분과 삶을 나누고 있다. 또한 교회는 한 성신 안에서 몸 전체의 기능을 이루기 위하여, 몸된 교회의 각 지체들을 축복하면서 그가 원하는 바대로, 각각 은사를 주시는 성신의 지배 아래에 있다. 한 하나님, 교회는 오직 그분께 영광을 돌리는 것을 최상의 궁극적인 목표로 삼는다. 이런 목표의 실현이 교회가 도시 속에서 성공하는 비결이다.
7. 교회의 법은 사랑의 법임. 삶과 봉사를 행하게 할 때에 모든 동기 중 가장 힘있는 것임.
8. 이 유기체적인 삶의 초자연적인 비밀은 부활임. 하나님의 교회는 그리스도의 역사적 부활과 또한 앞으로 있을 성도의 부활과 관련된 사람들의 공동체이다. 이 사이에서 교회는 마땅히 양자 모두와의 직접적인 관련 속에서의 그 기능을 다해야 한다. 교회의 삶은 그리스도의 재림시 성도들의 부활의 성취와 그 온전함을 향하여 가는 삶이다.
9.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힘쓰는 자들이 되라" (고전 15: 58)
고리도후서
1. 고린도 후서에서는 고린도전서와 똑같은 두 폭의 그림이 나타나 있다. 역시 고린도시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이다. 고린도전서에서처럼, 그는 교회로 하여금 도시 속에서 그 사역을 온전히 이루도록 촉구하였다. (125페이지)
2. 바울 사도의 자신의 사도직에 대한 변명은 몇몇 사람들이 자기를 아볼로나 게바처럼 높여 생각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화가 나 있었던 것이 아니다. 바울의 가슴 속에 있었던 열정과 괴로움과 눈물어린 근심의 이유는 고린도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자드의 진정한 기능을 이해하지도, 그 사역자들의 가르침에 복종하지도 않았으므로, 결국 고린도 시에 있어서 그 사역을 다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126페이지)
3. 따라서 교회 안에서 성도를 섬기는 사역이 무엇이며 또한 온 교회의 사역이 어때야 하는 가가 문제가 된다.
4. 직분자의 사역을 다룰 때, 사도는 고린도 후서 1: 1 절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과 및 형제 디모데는"이라고 말한다. 그는 사도가 아닌 디모데도 같이 결합되어서 언급하고 있으며 또 이내 실바누스와 디도도 언급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임명하심으로 봉사의 사역을 하게 된 이들이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적인 사역의 권위개념이다. 이 권위는 말씀의 권위이다. 위탁된 권위가 아니라 말씀 자체의 본질적인 권위임. 마치 예수님의 권위는 그의 가르침의 권위어서 가르침이 잇는 권세 있는 자의 가르침과 같아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놀랐던 것과 본질적으로 동일한 것이다. 이 말씀을 교회의 사역자들에 맡겨졌으며 사역자는 그것을 해석함으로써 교회로 하여금 봉사의 일을 하기에 온전케 하는 것이다.
5. 사도는 곧 말한다.
고후2:17 "우리는 수다한 사람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
6. 이 서신의 끝 부분에 가면 사도 바울이 환상과 계시들에 대해 자랑하는 것을 보게 된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 의 영혼에 개인적으로, 직접적이고 즉각적으로 하신 말씀이었다. 이 환상과 계시들은 공개적으로 알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준수되어야 한다. 틀림없이 그가 환상과 계시들에 대해 언급한 것은 14년이나 지난 후에였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언급하는 것이 정당하지 않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그 환상과 계시는 그의 인생을 사로잡았고, 또한 그의 삶에 올바른 방향을 향하도록 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의심하거나 두려워할 가능성은 없었다. 나는 환상에 대해서 말하고 싶어 안달아 하는 사람들은 혹시 악몽으로부터 시달리고 있는 이들이 아닌가 하고 의심을 하게 된다. 진정한 환상과 계시는 이야기 되어 질 수 없는 것이다. 결국 고린도 교회의 오해때문에 불가불 말할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놓일 때에 사도는 용서를 구하고 있는 것이다 . "너희가 나로 하여금 환상과 계시를 부득불 말하지 않을 수 없게 하였도다.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라, 내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나는 내가 말할 수 없는 것들을 보고 또 들었느니라."
7. 사역자에 대한 교회의 책임은 그 직분에 대해 순종할 책임이 아니라, 그가 선포하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순종해야 할 책임이다.
8. 마지막 메시지: 화목.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되어 있는가?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근본적으로 신분상으로 그와 화목되어 있다. 그러나 경험적으로 상태적으로 우리가 과연 하나님과 화목되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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